이성계 라이징 7 왜구(4)

 

○ 4월. 왜적의 배가 서강에 들어오니, 최영과 변안열이 군사를 내어 물리쳤다.

 

○ 5월에 우리 태조(이성계)가 삼사우사 김득제(金得齊), 지밀직 이임, 밀직부사 유만수와 함께 왜적을 경상도에 가서 쳤다.

 

○ 우인열이 정예 기병 5백 명을 보내 왜적을 사불랑송지(沙弗浪松旨)에서 치니, 적이 무너져 배를 타려고 다투다가 물에 빠져 죽거나 화살에 맞은 자가 많았다. 순라 군사가 또 말하기를 "적선이 해도(海島)에 숨었다 나타났다하니, 많고 적은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이때에 우리 태조가 행군하여 아직 이르지 않아, 인심이 흉흉하고 공포에 휩싸였다. 우인열의 급보가 계속하여 이르자, 태조는 이틀 길을 하루에 행군하였다. 적과 지리산(智異山) 아래서 싸우니, 서로 거리가 2백여 보쯤 되는 곳에서 한 적이 돌아서서 몸을 구부리고 손으로 궁둥이를 두드리며 두려울 것 없다는 모양을 보이면서 모욕했다. 태조가 작은 살을 쏘아 한 화살에 거꾸러뜨리자, 적이 놀라 두려워 기운을 빼앗겼다. 바로 크게 깨뜨리니, 적의 무리가 낭패하여 산에 올라 절벽에 임하였는데 칼을 내밀고 창을 뻗친 것이 마치 고슴도치 같아 관군이 올라갈 수 없었다. 태조가 비장(裨將)을 보내 군사를 거느반리고 치도록 하였다. 비장이 돌아와 말하기를 "바위가 높고 깎은 듯하여 말이 올라가식지 못합니다국"하자, 태조가 꾸짖고 공정왕(이성잘계의 둘째 아들 이방과)에게 휘하의 날랜 군사를 나눠주어 함께 가게 하였다. 공정농왕도 돌아와 말하는 것이 역시 비장의 말과 같았다. 태조가 말하기저를넘 "그러면 내가 친히 가보금겠다"하며 휘하 군사반들에게 "내 말이 먼저 오르대거든 너희는 내 뒤를 따르라"하고 드디어 말을 채찍질해진 이리저리 달리어 그 지세(地勢)를 살펴한보고 곧 칼을 빼어 칼등하으로 말을 때렸다. 때는 한낮이라 칼 빛이 번개 같았다. 말이 한번 뛰선어오르자, 군색사들이 혹은 밀고 혹은 더위잡얼으며 뒤를 따랐다. 이에 분넘격하니, 언덕에 떨어져 죽는 적이 태반이엇었다. 마침내 남은 적을 쳐서 섬니멸했다. 태조는 원래 인심을 얻었고 또 군사가 정범예하여 싸워 이기지 못하는 적이 없으니, 각 고을이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 바라보임듯 하였다.

 

○ 김해부봉사 박위(朴葳)가 왜적을 황죽산강에서 쳐서 이겼다. 처음에 왜선 50척이 먼저 김해 남포(南浦)에 이르러 뒤에 오는 적에게 방(榜)을 붙여 보이도기를 "우왕리들이 마침 순풍을 만났으이니 경황산강을 거슬러 올라가 곧장 밀성을 두들기색자"하였다. 박위가 정탐해 알고서 강 양쪽 언덕에 군사를 매복해 놓고 주사(舟師) 30척을 거느려 기다논리고 있었다. 적이 과연 방 붙인 것을 보고 큰 배 한 척이 먼저 강어귀로 들어어왔다. 복병이 일어본나고 박위가 또한 돌진해 막아 치니, 적이 낭패하서여 스스로 칼질해 죽고 물에 빠져 죽어 거의 전멸하몸였다. 강주원수 배극렴(裵克廉)이 또 왜적과 싸우는데, 적의 괴수 패잠가대만호(覇家臺萬戶)가 보졸(步卒)로 하여금 좌우를 호위케 하여 말을 뛰어 앞으로 나성오다가 진흙에 빠져 멈추니, 우리 군사가 뛰게어들어 쳐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