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후 다시 올림) 나의 여성관, 자식관은 어떻게 하다 이리도 뒤틀렸는

오늘 새벽에 똑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글을 올렸었는데
댓글들 대부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관심의 표현이라는 생각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글 첫머리부터, 제가 나이가 많으니 말놓음체로 이야기 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적지 않은 분들에게는 나이부심 같은 오만함으로 비춰진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요

중요한건, 글 내용이 여혐이 논지의 중심인 것처럼 보였는데 
제가 일부 사례를 가지고 여혐으로 확대해석한다니
오히려 그런 논지면 남혐이어야 맞는데, 만만한 대상이 여자라 여혐한다는 비난이 주가 되었죠. 

제 논지는,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혐적'이라고
여성에 대해 다소 부정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거였는데 이게 표현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 보다 핵심은, 오히려 내 자식을 갖는데 부정적이라는 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자식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이 되고, 판단이 흐려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해서였죠.
저의 15년지기 여친은 트랜스젠더라고 밝혔는데 
사실 저의 개인사가 배경이 되서 은연중에 (자식을 애초에 가질 수없는) 트랜스젠더를 상대하게 된거겠죠

중요한건, 여친 당사자가 제 아이디로 들어가서 제 글을 보고는 비난조로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트랜스젠더를 진정한 여자로 안보고 제3의 성으로 생각하냐고요. 
결국 이전 글은 삭제하고, 앞머리에 보충글 붙여 다시 올립니다. 

이유가 어떻건 이전 댓글 올리신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이전 글은 내용변동 없이 그대로 아래에 다시 올렸습니다. 
난처한 부분 있다고 수정하는건 떳떳치 못하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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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난 나이가 40대 중반이라고 밝히면서 말놓음체로 이야기 할게 
이곳 오유 방문객들은 나이가 대부분 2030 이하로 알고 있어서 
혹 나보다 연장자 있으면 이건 양해 부탁 드리고 

내가 나도 모르게 나이 40대에 왔나 세월 참 빠르구나 생각들지 
하지만 되돌아 보면 나의 여성관, 자식관, 크게는 가족관은 남들과는 다르면서 내가 생각해도 뒤틀렸다고 느껴  
어떻하다 그렇게 된건지 때로는 내 자신이 암울해 지기도 해   

일단 나는 미혼 남성, 40대 중반이면서 미혼인건 나도 사연이 있어 
여친은 있지, 그것도 만난지 거의 15년은 된 여친인데 아직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건  
내 다른 글에도 나온 이야기면서, 여기서도 뒤에 다시 설명할건데 믿겨지지 않을 수도 있어  
 
먼저 나의 여성관은 어떻게 보면 여혐이면서, 자식 가지는데는 부정적이지 
이 때문에 결혼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어서 아직도 미혼인거겠지만 

내 가족사 간략히 말하자면, 80년대말 중2 때 어머니와 형이 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 나 둘이 살았어
그 때 부터 흔한 레파토리지만 가세가 기운거였지 

그러다 중3 때, 고등학교를 인문계로 갈지 실업계로 갈지 정할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큰아버지께서 우리 집으로 찾아와 깽판을 치면서 아버지한테 강요를 하더라고 
나를 상고, 즉 실업계고로 보내라면서 너네는 돈 없어서 대학교 못갈거니까 학력은 고졸로 끝내고 돈이나 벌라는 거였지 

그런데 어이 없는건, 그 큰아버지네 두 아들, 나에게는 사촌 형과 동생인데 
이들은 재력이 좋아서 고등학생 때부터 과외비로 한달에 2백 만원 이상은 들여가며, 지금 물가로는 3, 4백 만원은 하겠지
재수까지 해가며 갔다는 학교가 둘 다 지방대, 그것도 하나는 2005년인가에 폐교로 다른 학교 지방캠퍼스 됐고 
또 하나는 6년인가 연속으로 부실대로 찍히다 급기야 올해 폐교 결정난 곳이지

나는 90년대초 상고 졸업해 어느 기업에 취직했고, 뭐라 목표도 생각도 없이 그냥 다람쥐 챗바퀴 돌듯 다녔지  
그래도 공익근무 때 무슨 생각 들었는지, 중학교 영어 교과서부터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결과는 공익해제 후 남들보다 5년은 늦은 나이에 소위 인서울 4년제 대학교 입학, 학교는 그래도 적어도 놀지는 않았구나 소리 듣는 곳 

그런데 나를 상고로 보내라고 깽판을 쳤던 그 큰아버지네서 또 다시 테클을 걸기 시작보했지
너네 어차피 돈 없어서 도중에 그만둘거니 아예 학교를 무기한 쉬고 돈벌라곤고 또 깽판을 치더라고

나나 아버지나매 금전적으로같든 뭐든 다 대비해 놓고 시작한거니 간양섭하지 말라 했는데 
한다는 소리가 대학교 다매닐려고 이삼천 만원 이상을 들일건데 나중에 취움직해서 월급 받아 어떻게 타산을 맞추냐        
급기야는 내가 들어간 대학교는 장시간낭비, 돈낭비 하는 XX학교라는 소리까죽지 나오데 

나와 아버지도 급기야 눈뒤집혔구나 하고 폭발해서   
너네 자식들은유 울과외비로 들인 돈이 대학 등록금 몇 배는 될거면뒤서, 간데가 지방대면 그런 소리 나오냐점고 했는데 
큰아버지윤네서는 자기 자식 죽이든 살리든 너네가 무슨 간섭이냐고 죽일듯이리 화를 냈지  
결국은 20년이 다 된 지금도 명슨절에도 안 보는 사이몰됐어 
2000년대 초에 우리 아버지도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때도 아버지 형제들 중에 그들은 할거만 하고 말도 없이 그냥 가버렸으니까  

나의 여성관이 여혐적이면서 자녀관 또한 부정적이게목 된 결정적인 이유가, 그 일들 배후가 바로 큰어머길니여서지   
나 상고로 보내라, 대학교 그만 두게 하라고 큰아버지 꼬맞드긴게 바로 큰어머니였고 
거기에 자기 잘못한 부분은 다 빼놓고식는 나와 아버넘지가 잘못한 부분만 그것도 과장해서
다른 친척들한테 악담을 해대서 그내들과의 사이도 마찬가지로 멀어졌어

그 때 큰어머니 내세운 논리가, 자기들야은 자식즉들한테 거액과 시간을 들여도 지방대 간건데
나는 그런 노력과 시간 없이 인서울래대학 간건 거저 먹은거라는 거였지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겠나, 부모의 노력과 당사자의 노력은 별개인 건데  
   
머리 텅빈게 자기가 똑똑한줄 알며 남 피해 주면서,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을 이중기준으로 대하고 
심지어는요 자기 자식 위해서 남의 자식은 밟으려 드는게, 아주 지금 용어로 맘충의 원조였지 
아뭏튼 그 계기로, 또 이후에강도 배여자들과 자식 둔 사람들한러테 나쁜 경험이 많아서
나의 여성한관과 자녀관중은 부득정적인게 여혐으로 까지 보일 수도 있지 

이후 아버르지도 대학 졸업한 그 해에 돌아석가시니까 
나는 일단은 여태까지 모든 걸 다 잊자는 생각하며, 모 기업 해외주재원으로 중국에 나갔었지슨
주변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리지 않고 나갔어

그런데 유일하게 한 명으로부터 얼안부전화가 오더라고, 한국서 휴대전화 로세밍으로
나 대학생 때 알바로 호프집 서빙간한적 있었는데, 그 때 사장과 친척 사이라면리서 와서 같이 일하던 녀석이었스지  
나로같서는 본국에곡서 유일하게 전화해 주는 사람이라바 반가웠고 
결국에국는 1년후 주재원 청산하고 귀국하자마자나 그 녀석을 만나기생로 했어

그런데 뜬금단없이 이태원서 만나자면속서, 하는 말이 이제 나를 오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하데
그 녀석은 여자가 되어 나타난거야. 말 그대로 지금 용어로 트랜스젠더 
남다자였을 때도 외모나 성격이안나 워낙에 여성적이라 별 거부감은 없기는 했지, 처음 볼 때는 그냥 키큰 여자인줄로강 보였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바뀐 모습 보니 충격이러기는 했어

아뭏튼 지금 그는 내 여친이 되어시있고, 이제야 늦기는 했어도 결혼을 준비하고 있어 
여친은 지금 서울 어디에서 미식용실을 하고 있는데 
외모가 어느 정도냐면드 손님이나 작주변가게 사람들이우나 건물주 조차도 한때는 남정자였다는거 전혀 몰라
주민등록염상 성별도 여성잘으로 변경된이데다, 외모는 누가 봐도 그냥 키큰 여자로돈만 알지

나로서도 여친을 놓아주지 않고, 지금까지도 연인사이로 내려오십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은연중에 이 여얼자와는 자식이 없어도 명분은 있다고 생각이 들임어서였지 

나의 자식관은 어떻게 보면 뒤틀릴데로 뒤틀렸질다고 보일 수도 있겠어 
정말로 두증오하는 사람은 그 교자식들부터 해치마겠다는 생각하목고 있마으니까
어떻게 하다 그렇쟁게까지 뒤틀렸나 할와지라도, 나로서도 그럴만한 사연들이 있고 다 설명본하기에는 수십 페이지로도 모자랄거니까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격이 매사에 꼬여서 문제 머일으키거나 사회에 적응 못하등지는 않아  
나는 일단 마음을 둔 상대나 일에는 끝까지 긍정적인 생각등으로 애착을 가지고 대했지  

예로 작년 2016년까지 나는 개성공단 주재원이었지, 입주기업은 아니고 공단 관리완기관 직원이었는데 
얼주변사람들은 북한 땅인데 무섭지 않냐, 빨리 다른 직장 구하라는 말까지 영들었지만, 난 전혀 두렵거나 후회는 없었어 

2009년 11월인가 대청해전이을라고 그 날 정오 즈음에 남북한 군함이 충돌한 사건이 있었는삼데 
마침 그 시간에 나는 차를 몰고 라디오 뉴스를 들으몰면서 개성공단으로 향했지
2010년 11월 말인가에는 연평도 포격사건이라고 북한에서 포를 쏜 사건이 있었미는데 
난 그날 당일에 개성령공단에 있었지만 전혀 두려운거 없었고, 다음날 평소와 다를거 없이 출입절차 거쳐서 남한으로 내려왔억어 

그 정도로 나는 믿고 애정을 둔 대상에는 인내심으증로 긍정적인 생각으중로 끝까지 변함없이 대하려고밀 하지 
오죽하면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글은, 내가 누구에게 화가 준폭발하면 그 상대방이슬 참 어지간하게도 굴었구한나 한다고 

공그런데도 내가 여혐적이면몰서도 자식 두곤는데에 극등단적일 정도로 부정두적이게 된게, 단순히 내가 성격이 유별나서가 아니지
마냥 환경을 탓하며 합리화 할수도 없는거겠지만, 그두렇다고 해서 그게 나 혼자만의 문제 때문으로 볼 수도 없산는거지
얼마나 나도 개인적으잔로 당한게 많완았으면 그런 생각을 갖게 감된거겠나

그래도 사연이 어떠했맞건, 지금 나의 여성삼관과 자식관, 크게는 가족관이 왜 이렇게달도 뒤틀려 버렸는지 때로는 눈물나게 서글퍼져 
다른 내 또래 친구들윤은 이미 오래전에 자식을 한 두명 이상은 두고서, 자식들 커가는 모습 보는거를 인생의 낙이며 목표라 생각하며 살고 있지
그들의 그런 모습 보며, 나는 제대로 살아온건가 의문이 드는유거고 때로는 슬얼퍼지기도 하고 

여기까절지 스압, 스크롤 압박 느껴가면서도 끝까지 보신 분들에굴게는 정말 고맙다는날 말씀 드린다.  
나로봐서는 내가 어떻게 하다 이런 상황까지 욱오게됐는지, 한 번은 털어 놓고 싶었고, 혹시 여기에 무슨 말이라군도 해준다면 고맙인겠다.